일상의 글쓰기32 남편 "여보! 린도 디아(lin día, 멋진 날)네요. 구름 한 점 없어요." 며칠 전 문득 바깥을 보다가 내가 외쳤다. 집안에만 갇혀 있는 것이 답답해서 가끔 하늘을 보는 게 요즘 일상인데 그날따라 정말 구름 한 조각 없이 깨끗했다. 그 말을 듣고 남편이 발코니 쪽으로 가더니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저기 구름이 있네. 구름이 많구먼." 그럴 리가 없어서 확인하기 위해 발코니 쪽으로 갔다. "어디?" "방금 지나갔다. 쌩하고." 구름이 무슨 제트 비행기도 아니고, 순간 빵 터지고 말았다. 이런 것이 남편과의 일상다반사이다. 코로나 때문에 생업을 중단한 채 몇 달을 집에서 보내고 있으니 절대 웃을 상황이 아닌데 말이다. 한 번은 큰 아들이 이렇게 말했다. "우리 아빠는 150살까지 사실 거예요. 장수하는 .. 2020. 7. 26. 아르헨티나 경제와 코로나 어제가 아르헨티나 독립기념일로 공휴일이었고 오늘은 금요일인데도 공휴일이다. 일명 '다리 공휴일(bridge holiday)!' 이런 강제 자가격리 기간(cuarentena)에 다리 공휴일이 무슨 의미가 있다고 다리 공휴일을 지정하는 걸까? 하기는 이런 시기에도 일부 매일 출근하는 사람들도 있으니까 그런 사람들한테는 모처럼의 긴 주말이 될 것이다. 점심 식사를 끝내고 생필품을 구입하러 집근처 마트에 갔다. 한국의 대형마트에 비할 건 아니지만 여기서는 꽤 규모가 큰 '꼬또(coto)'가 가까이에 있어 편하게 이용하고 있다. 격리 기간이지만 마트는 열려 있어 그나마 다행이다. 그러나 출입인원을 제한하고 있어서 바깥 길에 줄 서서 기다려야 한다. 입구에서 문을 지키는 안전요원이 문을 열어주어야 들어갈 수 있고 .. 2020. 7. 26. 잠들기 힘든 밤을 보내고 어제는 하루를 보내고 자정이 다 되어서야 잠자리에 들었다. 낮 동안에는 눈이 쏙 들어가도록 피곤함을 느꼈는데 자려고 하니 의식이 점점 더 또렷해지고 모든 감각이 날카롭게 살아나는 것이었다. 희미한 창 밖의 불빛마저 성가셔서 눈을 감으니 이젠 여러 가지 소리가 머릿속으로 들려왔다. 멀리서 들리는 구급차 사이렌 소리, 개 짖는 소리, 길고양이들 가르릉 거리는 소리, 어느 집인지 변기 물 내리는 소리, 이웃 아파트 중앙난방 보일러 돌아가는 소리, 그리고 바람에 흔들리는 문 소리, 도시는 깊은 밤에도 깨어있다. 휙 이불을 뒤집어쓰고 돌아누우니 이불깃에 배어 있는 내 숨 냄새가 느껴졌다. 또 얇은 잠옷마저 배겼다. 침대 시트 밑에 깔려있는 전기 옥돌 매트의 납작한 돌들도 내 등을 딱딱하게 눌러댔다. 아오~~ 정말.. 2020. 7. 22. 풍성한 삶 결혼 25주년 기념일이다. 은혼기념일! 남편에게 말했다. "참 많이도 살았네요." 그랬더니 "허허" 한다. 어떻게 보면 눈 깜짝새인 것 같다. 한 시기 한 시기마다 그 속에서 웃고 울고, 그러면서 아이들은 커가고 우리는 늙어간다. 아직 늙었다고 하기엔 좀 애매하지만 이제 인생의 맛을 조금은 알게된 것 같다. 한 번도 넉넉했던 적은 없지만 그래도 다른 이들에게 선물도 하면서 살았고 하루도 양식이 없어 굶주린 적 없지만 상대적 빈곤감이라는 것을 느낄 때면 속이 허하다 못해 삶이 나를 속이는 것 같아 남 몰래 훌쩍일 때도 있었다. 뒤 돌아 보면 그 때 이랬으면 좋았을 걸 하고 아쉬움이 남는 일들도 몇 가지 있지만 어찌 알겠는가, 그랬더라면 지금 더 심한 상실감에 빠져 있을지.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을 인간이 더.. 2020. 7. 21. 아들 생각 오전 11시 가정 예배를 드렸다.(코로나로 인해 모이지 못하고 있음) 함께 찬송하고, 기도하고, 묵도하고, 신앙고백하고, 또 찬송하고, 설교말씀을 들었다. 소천하신 김 성수 목사님의 '예수님의 비유 다섯번째' 말씀이었다. 감사한 것은 큰 아들이 1시간 30분이나 되는 설교를 열심히 경청하는 것이었다. 어려운 내용들인데 성령 하나님께서 들을 귀를 주셔서 하나님의 비밀인 그리스도와 하나님 나라를 잘 이해할 수 있도록 해주시기를 기도하면서 예배를 드렸다. 한국에서 군복무 중인 작은 아들에게도 동일한 은혜를 부어주시기를 기도했다. 한국은 지금 몹시 무덥다고 한다. 여름철이면 작은 아들 손에 땀이 많아 책을 볼 때 종이가 젖을 정도였는데 지금도 그렇다면 많이 불편할 것이다. 아무쪼록 힘들고 외롭더라도 감사하고 기.. 2020. 7. 21. 그놈의 자존심! 어젯밤 남편과 함께 유튜브에 올라와 있는 '조정래' 원작 《태백산맥》이라는 영화를 보았다. '임권택' 감독이 만들고 배우 '안성기'가 주연을 맡은 1994년작 영화이다. 원래 《태백산맥》이라는 소설이 10권이 넘는 방대한 분량이라 그렇게 긴 내용을 2시간짜리 영화에 다 담아내기에는 무리였을 것이다. 하지만 남편과 내가 몰두해서 볼만큼 재미있었다. 일제 강점기를 갓 넘긴 1945년 10월부터 한국전쟁이 끝나는 시기의 여수 순천 '벌교'라는 마을에서 있었던 역사적 사건들을 배경으로 하고 있는 내용이다. 여순 반란 사건, 빨치산, 친일지주들의 횡포, 처참한 소작인들의 절망, 그리고 이념의 대립으로 짓밟히는 당시 한반도 상황을 잘 그려놓았다. 남녀노소 빈부귀천을 무론하고 어떤 인간에게나 들어가 있는 죄의 본성과.. 2020. 7. 21. 이전 1 2 3 4 5 6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