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보! 린도 디아(lin día, 멋진 날)네요. 구름 한 점 없어요."
며칠 전 문득 바깥을 보다가 내가 외쳤다. 집안에만 갇혀 있는 것이 답답해서 가끔 하늘을 보는 게 요즘 일상인데 그날따라 정말 구름 한 조각 없이 깨끗했다. 그 말을 듣고 남편이 발코니 쪽으로 가더니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저기 구름이 있네. 구름이 많구먼."
그럴 리가 없어서 확인하기 위해 발코니 쪽으로 갔다.
"어디?"
"방금 지나갔다. 쌩하고."
구름이 무슨 제트 비행기도 아니고, 순간 빵 터지고 말았다.
이런 것이 남편과의 일상다반사이다. 코로나 때문에 생업을 중단한 채 몇 달을 집에서 보내고 있으니 절대 웃을 상황이 아닌데 말이다.
한 번은 큰 아들이 이렇게 말했다.
"우리 아빠는 150살까지 사실 거예요. 장수하는 사람들의 공통점이 있는데 금연이나 금주보다 잘 웃는 거래요. 웬만해서는 심각해지지 않고 즐겁게 사는 거래요. "
그렇다. 우리 집 아빠는 전혀 근심 걱정이 없는 사람처럼 보인다. 나와는 참 대조적이다. 사람이 살다 보면 집안 일만 해도 걱정거리가 한두 가지가 아닌데 집에 무슨 일이 있어도 나 혼자 걱정하고 있다.
식탁에서 오가는 썰렁한 아재 개그, 혼자서 손뼉치며 춤 추기, 외면하는 식구들과 굳이 눈 마주치기, 큰소리로 노래하기 그것도 음정 박자 무시하고, 내가 제발 그러지 마시라고 면박을 줘도 아랑곳하지 않는다.
"우리 이런 영양가 없는 이야기 하지 말고 뭔가 주제를 정해서 토론을 합시다."
이러면 기겁을 한다. 식구들끼리 심각한 토론이 웬말이냐는 것이다. 처음에 나는 이런 남편이 점잖지 않다고 생각했다. 나는 말이 없는 편이고 진지한 이야기를 좋아하는 반면 남편은 그런 걸 피했다. 나는 조용하고 분위기 있게 식사시간을 가지고 싶은데 남편은 후루룩 짭짭 맛있는 소리를 내면서 빠르게 식사하고 자리에서 얼른 일어난다. 나는 영화나 음악 감상을 좋아하는데 남편은 스포츠를 좋아하고 깔깔 웃어넘길 수 있는 예능 프로그램을 좋아한다. 체구도 나는 작고 아담한데 남편은 키가 크고 늘씬하다.
이런 남편을 나는 '싱거운 사람', '아무 생각 없는 사람', 또는 '마냥 행복한 사람'이라고 규정지었다.
그런데 요즘 생각해 보면 이런 남편 덕분에 지난 내 인생이 어려운 중에도 웃을 수 있었던 것 같다. 몸도 마음도 예민하고 약한 나를 끊임없이 배려하고 너그럽게 받아주었기 때문에 험한 세상 견디며 살아올 수 있었다.
"좋은 것으로 네 소원을 만족케 하리라."
하신 말씀대로 하나님께서 참 좋은 남편을 주셨다.
2020년 7월 11일 토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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