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의 글쓰기

격리 기간의 일상

거북이(hangbokhan gobooki) 2020. 7. 20. 23:41

 늦은 점심을 먹고 설거지하고 한 숨 돌리니 오후 세 시가 넘었다. 그도 그럴 것이 식사 준비를 늦게 시작하기도 했지만 남편에게는 떡국, 아들에게는 라면, 나는 묵은 밥에 밑반찬, 이렇게 세 사람 모두 기호대로 다르게 준비하다 보니 더 늦었다. 게다가 나는 두 사람 식후에 느지막이 음악을 들으면서 천천히 먹으니까.
 설거지가 끝나면 냄비에 우유를 데워 카푸치노 커피를 만든다. 이것도 남편님과 아드님께 먼저 받들어 드리고 그 후에 나 홀로 커피를 즐긴다. 이러고 나면 겨울철 짧은 하루 해가 다 간다.

 중고 판매방에 물건 나눈다고 올렸었는데 오늘 찾으러 온 사람이 있었다. 한국 아주머니인데 고맙다면서 집에서 직접 만든 피클을 작은 병에 담아 왔다. 별 것도 아닌 것을 주면서 이런 사례를 받으니 괜히 부끄러운 마음이 들었다.

 

 한 달 이상 큰 비닐봉투에 모아 둔 채 구석에 방치되어 있었던 헌 옷과 헌 가방들을 집 밖으로 내놓았다. 한인들에게 나누겠다고 중고 방에 내놓아도 되겠지만 아무래도 현지인들에게 나누는 것이 마음이 더 편해서 그렇게 했다. 길가에 놓아두었는데 부디 쓰레기로 버려지지 않고 꼭 필요한 사람이 가져갔으면 좋겠다.

 이 지구상에서 날마다 버려지는 쓰레기 양과 쓰레기 종류들을 생각하면 끔찍하다. 이와 관련하여 꼭 필요한 최소한의 것만 가지고 단순하게 살아가겠다고 하는 '미니멀리즘'이라는 것도 생각해 본다. 이 사조가 처음에는 미술 분야에서 시작되었다고 하는데, 건축 등 여러 분야에까지 영향을 미쳤고, 최근에는 라이프 스타일로까지 자리 잡아가고 있다. 더군다나 종교인들의 믿음이나 철학과도 맞닿아 있어서 단순한 한 때의 유행 같지는 않다.

 

 그런데 요즘 인터넷을 통해 보면 유튜브를 하기 위한 보여주기식 미니멀 라이프도 없잖아 있는 것 같다. 종교적 신념이나 나름의 철학이 있는 사람이라면 보여주기 위한 쇼가 아니라 버려지는 쓰레기에 대한 고민도 함께 할 것이다.
 방송용 미니멀 라이프를 위해 얼마나 많은 것들이 버려지고 또 사들여졌을까? 그리고 또 그것을 따라 하는 많은 사람들, 미니멀리즘을 위한 새로운 소비와 그마만큼의 쓰레기, 이건 아주 웃기는 아이러니이다. 그리고 나 역시 거기에 한몫하고 있는 건 아닌지 반성해 본다. 이제는 누군가 내게 물건을 준다고 하면 가능하면 받지 않아야겠다. 정말 필요한 사람에게 그 물건들이 가도록 생각 좀 하면서 살아야겠다. 미니멀리스트라고 해서 다 같은 것은 아니다.

 

 쓰레기가 많은 세상에 쓰레기가 어찌 물질적인 것만 있으랴. 쓰레기 같은 생각, 쓰레기 같은 인간들도 있을 것이다. 하나님을 떠난 인간들이 내 놓는 것들은 따지고 보면 모두 쓰레기들이다. 자본주의 사회는 또 얼마나 많은 쓰레기를 토해 내는지, 머지않아 자본주의는 종말이 올 것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생태계가 파괴되어 각종 전염병이 세계를 휩쓸면 필요 없어지는 물건들도 많을 것이다. 내 미니멀 라이프는 시간이 걸리더라도 천천히 불편을 감수하면서 환경을 생각하는 쪽으로 나아가기를 바란다. 꽃씨를 뿌리고 나무 가꾸는 것을 큰 보람과 미덕으로 여기는 사람들이 세상에 아주 많아지면 참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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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몇 달을 미뤄두었던 일을 방금 해치웠다. 남편 셔츠 하나, 아들 셔츠 하나, 내 셔츠도 하나, 이렇게 셔츠 세 개 다리는 것인데 별 것도 아닌 일을 여태 미뤄 뒀었다. 격리 기간 전에는 하루하루가 너무나 바쁘고 치열해서 다림질 할 여력 조차 없었고 격리 후에는 잊고 있었다.

 

 2019년은 정말 치열하게 시작했고 치열하게 마쳤다. 나에게 어울리지도 않는 '탑(top)'이라는 품목을 택해서 거래처를 물색하고 중간 도매를 하면서 처음에는 울기도 많이 울었는데 1년을 지나면서는 어느 정도 궤도에 올라 자신감도 생겼다. 그렇게 딱 1년 지나자 난 데 없이 코로나라는 복병을 만났다. 갑자기 모든 것이 거짓말처럼 멈춰 버렸다. 그것도 전 세계가!

 

 그리고 '포스트 코로나'라는 말이 화두에 올랐다. 이후로는 세상이 급격하게 바뀔 것이라고 한다. 그러잖아도 너무도 빠른 변화에 멀미가 날 지경인데 이전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급격하게 바뀐다는 것은 어떤 변화를 의미하는지 두렵다. 더군다나 지금 상황은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때라 무엇을 준비해야 할지 정말 모르겠다. 아르헨티나 현지인들도 지혜로운 사람들은 집에서 공부를 하든 뭐를 하든 무언가를 준비하고 있는 사람들도 있는 것 같다.


 엄청 바쁘다가 갑자기 모든 것이 멈춰버리면서 처음에는 이런 쉼을 주셔서 감사하다고 생각하며 하루하루를 누렸다. 그러나 2주로 끝날 줄 알았던 격리가 벌써 넉 달이 되어가고 있고, 일상으로의 복귀는 아직 요원하다고 하니 믿음으로 마음을 지키기가 힘든 상태가 되었다.

 

 그리스도인들에게 '두려움'과 '염려'라는 단어가 가당키나 한가?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마태복음 6장 33절)


"주님만 구합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만이 저의 생명이요 저의 보배시니 주님만 구하도록 저를 이끄소서!"
다림질 하면서 드린 기도이다.

 

                    2020년 6월 22일 월요일

 

 

 

수도 부에노스아이레스의 흔한 풍경 위로 무지개가 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