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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의 글쓰기

구제불능 인간

by 거북이(hangbokhan gobooki) 2020. 8. 6.

 밤 8시 30분, 한국 시각으로는 여기보다 12시간 앞선 오전 8시 30분, 한국 친정에 전화를 드렸다. 어머니 생신이다. 만 여든 다섯 생신. 벌써 손수 미역국을 끓여 아침식사를 끝내시고 아버지는 소파에서 잠이 드셨다고 한다. 아들, 딸, 며느리 다 있건만 누구 하나 생신상을 차려드리지 못하니 참 쓸쓸하실 것 같다. 그래도 다행히 목소리는 밝고 건강하게 들린다.
 

 나는 멀리 이국 땅에 있으니 그렇다 치더라도 같은 한국에 살아가는 자식들은 찾아뵐 수 있을텐데 하는 마음이 든다. 하기는 하나같이 다들 바쁘고 일에서 손을 떼지 못한 데다가 거리상으로도 꽤 떨어져 있으니 그럴 것이다. 나 역시 한국에 있을 때에도 부모님이 삶의 우선순위가 아니었다. 다른 형제들을 탓할 처지가 아니다. 불효자식으로 치자면 사 남매 중에 나 같은 불효자식이 없다. 이렇게 멀리 떠나온 것부터 부모님 마음에 말할 수 없는 근심거리를 안겨드린 것이다.
 

 연세가 높아가면서 점점 더 쇠약해지시는 것을 멀리서도 느낄 수 있다. 특히 아버지는 귀가 어두워지시고 목소리도 예전같지 않으시다. 부모님의 영혼구원을 위한 오랜 기도가 응답되어 두 분 모두 교회에 출석하신 것이 10년이 넘었다.
그러나 오늘처럼 이렇게 통화를 하고나면 부모님의 신앙에 의구심이 생긴다. 내가 먼저 믿음에 관한 화제를 꺼내지 않아서이기도 하겠지만 그래도 마음이 좀 답답해진다.
 

 늘 자식들 걱정 뿐인데 이제는 손주들 걱정까지 하고 계신다.
 "○○는 올해 성균관 대학교 들어갔는데 코로나 때문에 온라인으로 공부한다더구나. 그 대학교는 졸업하면 취직 걱정은  없다더라. □□는 군대에서 잘 지내는지 소식 전하더냐? ◇◇도 한국에서 학교를 다니면 더 좋을 텐데 요즘 뭐 하고 지내느냐?"
 이런 말씀들 뿐이다.
 어머니 걱정하지 마시라고 ◇◇는 한국 공관에 지원하여 1차 서류시험에 합격했고 면접시험을 기다리고 있는데 코로나 때문에 잠정적으로 연기 중이라고 말씀드렸다.
 그렇게 통화를 끝냈는데 옆에서 듣고 있던 아들 ◇◇가 이런다.
 "아직 완전히 합격한 것도 아닌데 그런 말씀 하지 마시지 그러셨어요."
 

 어머니와 통화를 하면 자주 드는 어떤 특유의 기분이 있다.
 '남보다 더 앞서서 달려야 한다. 성공해야 한다. 왜 아직 그렇게 살고 있느냐!'
하는 질책이 느껴진다.
 "네 어머니" 하면서 듣고 있지만 마음은 좀 힘들다. 당연히 자식들 세상살이가 조금은 덜 고단했으면 하는 마음에서 그러실 것이라고 생각한다.
 

 어차피 인생길은 광야 길이다. 그걸 누가 피할까? 대학 교육 그건 받아도 되고 굳이 받지 않아도 된다. 부자여도 괜찮고 좀 가난해도 괜찮다. 유명해지는 것도 괜찮지만 은둔의 삶도 멋지다. 지식이 많아도 좋지만 무식하다 해서 덜 행복한 것은 아니다. 꼭! 반드시! 이래야 한다 저래야 한다는 것은 없다고 생각한다. 반드시 경쟁에서 이길 필요가 없다. 좀 바보처럼 당해도 괜찮은 것이 그리스도인의 삶의 여유가 아닐까?

 하지만 나의 이런 생각들도 때때로, 아니 자주 흔들린다. 왜냐하면 이 길은 내 가까운 사람들을 포함하여 대부분의 사람들이 걸어가는 길이 아니기 때문이다. 또한 내가 그만큼 강하지 않기 때문이다. 자기가 꿈꾸는 세상을 향해 흔들림 없이 끝까지 걸어갈 수 있는 것은 진정 강자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다. 사실 나에게는 그만한 힘이 없는데 희한하게도 내 삶을 그렇게 이끌어 가시는 것을 보게 된다.
 

 내 자녀들에게 바라는 한 가지는, '예수님만 잘 믿는 것'이다. 자녀들의 배우자의 조건도 그것, 예수님만 잘 믿는 것이다. 실제로 아들들에게 그렇게 말해주곤 한다. 뼈속까지 내가 정말 그렇게 여기는 것인지 의심스러울 때도 있지만 마음이 가볍고 자유로워짐을 본다. 

 

 여기까지 나도 사실은 많이 힘들었다. 연단이 많았다. 죽을 것처럼 힘들었었다. 힘들었던 이유는 간단하다. 내 속에 있는 위선과 교만함. 나도 그 깊이를 가늠하지 못한다. 어떤 사람을 만나든지, 어떤 상황에서든지 거의 자동반사적으로 장착되는 마음의 자세가 있다. 다른 사람들도 그런지 나만 그런 것인지 모르겠다. 

 '나는 당신들과는 좀 다른 사람입니다.' 라는 생각.

 이러한 아무런 근거 없는 우월감이 때로는 참을 수 없는 열등감으로 모습을 바꾸어 불쑥 고개를 들고 올라올 때도 있다. 지금도 이런 면은 변하지 않고 내 인격 속에 칡덩굴처럼 뿌리내린 채 절대로 뽑히지 않는다. 변한 줄 알았는데 어느 날 보면 변한 것 없이 그 자리에 흉측한 모습 그대로 남아 있다. 변한 게 있다면 내 정체를 알아차렸다는 것뿐이다. 

 여기서 더 끔찍한 것은,

 '이게 바로 나의 탁월함이지...'라는 교활한 자기 만족이다. 결국 별 볼일 없는 인간이라는 것을 반증한다. 

 

 자기 모습을 바로 안다는 것, 특히나 자기의 내면을 제대로 안다는 것은 누군가 빛을 비추어주어야만 가능한 일이고, 거울이 있어야 볼 수 있는 일이다. 자기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하나님 앞에서는 모든 사람이 죄인인 것은 매 한 가지이다. 죄인인 줄 아는 사람이나, 죄인인 줄 모르는 사람이나 다 죄인이다. 또 죄를 벗어버리고자 애쓰는 사람이나 그렇지 않은 사람이나 모두가 다 죄를 벗어버리지 못한 채 불구덩이를 향해 가고 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어떤 사람에게 빛을 비추어주시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 사람을 영원히 살리시기로 작정하셨다는 뜻이다. 아무 사람에게도 보이지 않는 환하게 빛나는 그 길을 보여주시기 위함이다. 아무런 조건 없이! 

 

 어머니와의 통화로 생각이 깊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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