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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려3

어느 우울하고 부끄러운 날 어제저녁 식사 시간에 남편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원래 있던 선교회에서 나와 S선교회로 옮겼던 이야기를 하게 되었다. 그 사건은 여전히 내 마음을 답답하게 한다. 돌이킬 수 없는 일이라 생각하며 참고 있을 뿐이지 남편의 섣부른 결정이 우리 가족 전체에게 중대한 영향을 끼쳤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남편이 몹시 싫어하는 이야기인 줄 알면서도 남편을 궁지로 몰아세우고 말았다. 남편은 이렇게 변명한다. 20년 넘게 온 힘을 다해 헌신했던 곳을 떠나 나오니까 그 공허함을 도저히 참을 수 없어서 그랬노라고. 고작 그 '참을 수 없는 공허함'이라는 감정 때문에 가족들의 삶의 방향이 달린 일을 단 며칠 만에 한 마디 상의도 없이 결정해 버리다니, 그건 분명 잘못한 일이다. 그 경솔함과 유약함을 내가 어떻게 받아들이.. 2020. 7. 21.
격리 기간의 일상 늦은 점심을 먹고 설거지하고 한 숨 돌리니 오후 세 시가 넘었다. 그도 그럴 것이 식사 준비를 늦게 시작하기도 했지만 남편에게는 떡국, 아들에게는 라면, 나는 묵은 밥에 밑반찬, 이렇게 세 사람 모두 기호대로 다르게 준비하다 보니 더 늦었다. 게다가 나는 두 사람 식후에 느지막이 음악을 들으면서 천천히 먹으니까. 설거지가 끝나면 냄비에 우유를 데워 카푸치노 커피를 만든다. 이것도 남편님과 아드님께 먼저 받들어 드리고 그 후에 나 홀로 커피를 즐긴다. 이러고 나면 겨울철 짧은 하루 해가 다 간다. 중고 판매방에 물건 나눈다고 올렸었는데 오늘 찾으러 온 사람이 있었다. 한국 아주머니인데 고맙다면서 집에서 직접 만든 피클을 작은 병에 담아 왔다. 별 것도 아닌 것을 주면서 이런 사례를 받으니 괜히 부끄러운 마.. 2020. 7. 20.
염려하지 말라 지난 3월 20일부터 시작된 의무적 자가격리(cuarentena)가 석 달 가까이 지속되고 있다. 1920년대 세계적 대공황 이전에 있었다는 '스페인 독감', 몇 년 전 있었던 '사스', '메르스', '에볼라' 등등. 지금의 코로나 19와 비견되는 전염병들이 있었지만 이번 코로나처럼 전파력이 강하고 오래 지속되는 것은 없었다고 한다. 한국은 잘 갖춰진 방역 시스템으로 전국적인 의무적 자가격리가 없이도 세계에서 주목하는 전염병 극복 모범국이 되었지만 아르헨티나는 초기에 먼 나라 불구경하듯 멀뚱 거리다가 3월 들어 전국적인 강제 자가격리를 실시함으로 모든 경제 활동이 마비되고 말았다. 4월에 휴가를 나와 아르헨티나를 방문할 것으로 고대했던 군 복무 중인 작은 아들의 계획도 수포로 돌아가고, 재아 한국문화원에.. 2020. 7. 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