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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의 글쓰기

온라인 중고 거래

by 거북이(hangbokhan gobooki) 2020. 7. 20.

 늦잠 자는 것이 격리 기간 중의 습관이 되어버렸다. 일찍 잠자리에 누워도 눈만 말똥말똥 이 생각 저 생각, 생각만 많고 몸도 편치 않아 오래도록 뒤척이며 잠들지 못하다가 아침에 눈을 뜨면 "아, 그래도 자긴 잤구나 또 하루가 시작되었구나!" 한다.

 한국에 있는 ㅇㅇㅇ에서 유 목사님이 입금해 주신 헌금과 여기 윤장로 님이 헌금해 주신 것 외에는 몇 달 동안 수입이 '0'였는데 온라인 중고장터에 집에 있던 운동기구 하나를 팔고 1000 페소를 손에 넣었다. 요즘의 페소 가치로는 천 페소가 얼마 안 되는 돈이지만(한국 원화로는 10.000원), 서 너달 만에 처음 번 돈이라 기뻤다. 그래서 또 팔 수 있는 게 뭐가 있을지 찾아보고 있다.

 안 입는 옷, 안 쓰는 주방용품, 안 쓰는 운동기구 등등 살펴보니 정말 갖고 있는 물건이 너무 많다고 느껴진다. 살림을 간소하게 꾸려나가기 위해서 늘 정리하고 나눠주고 했는데도 왜 이렇게 쓰지 않는 물건들이 넘쳐나는지 그 이유를 곰곰히 생각해 보았다. 쇼핑을 좋아해서가 아니다. 나는 물건 사는 것에 거의 돈을 쓰지 않는다. 물건이 많은 이유는 지인들로부터 자주 받기 때문이다.

 "제가 쓰지 않는 무엇무엇이 있는데 쓰실래요?"
 하고 누군가 물어오면 거절한 적이 별로 없다. 핸드백, 바지, 코트, 신발 등. 받을 때는 고마운데 나중에 보면 내가 쓸 만한 것은 거의 없다. 간혹 한 두 개 건질 것이 있기도 하지만 거의 다 다시 정리해서 누굴 주든지 버려야 하는 것들이다.

 결혼 후 지금까지 한 번도 풍족했던 적은 없다. 지난 날에는 그것이 불만이었지만 돌이켜 보면 그렇다고 헐벗고 굶주리지는 않았으니 잘 살아온 것이다. 어차피 이 땅에 잠시 머물다가 떠나야 하는데 값 비싼 것도 필요 없고 넘치도록 많이 쌓아둘 이유도 없다. 꼭 필요한 것 몇 가지만 있으면 충분하다. 이제는 그런 것 그만 받아야겠다.

 지금 내게 필요한 것은 생필품, 식료품 구입과 공과금 내는 데 쓸 현금이 필요하다. 감사하게도 아르헨티나 정부에서 코로나로 생업이 중단된 자영업자들에게 무이자로 빌려준 대출금이 있다. 그러나 이것은 신용카드 결제 용도로만 쓸 수 있어서 신용카드를 취급하지 않는 곳에서의 구매는 현금이 필요한 것이다.

 몇 가지 쓰지 않는 물건들을 중고거래방에 내놓았는데 반응이 없다. 모두가 어렵고 힘든 시기인지라 꼭 필요한 것 아니면 저렴해도 사지 않는 것 같다. 그래서 어차피 내게는 필요하지 않은 것들 살림 정리하는 거다 생각하고 강판, 소쿠리, 그릇, 화분, 컵, 찻잔세트 등을 무료로 나눠주겠다고 했더니 광고한 지 1분도 되지 않아 반응이 왔다. 무려 10명이 넘는 사람들이 전화와 문자 메시지를 보내왔다. 서로 자기가 가져가겠다고 하고 어떤 사람은 자기가 대학생인데 자취하려고 방은 구했지만 살림 장만을 아직 못했다는 사연까지 적어 보냈다.
 

 이 상황에 처음에는 약간 쓴웃음이 나기도 했지만 돈을 받고 파는 것 보다는 사실 더 기뻤다. 이렇게 물건이 넘쳐나는 시대에 생활고가 존재한다는 것이 안타깝다.

 모든 것이 풍부한 만큼 나눔도 더 풍성해지기를 기도한다.

                                             2020년 6월 22일 월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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