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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의 글쓰기

아르헨티나 경제와 코로나

by 거북이(hangbokhan gobooki) 2020. 7. 26.

 어제가 아르헨티나 독립기념일로 공휴일이었고 오늘은 금요일인데도 공휴일이다. 일명 '다리 공휴일(bridge holiday)!' 이런 강제 자가격리 기간(cuarentena)에 다리 공휴일이 무슨 의미가 있다고 다리 공휴일을 지정하는 걸까? 하기는 이런 시기에도 일부 매일 출근하는 사람들도 있으니까 그런 사람들한테는 모처럼의 긴 주말이 될 것이다.

 점심 식사를 끝내고 생필품을 구입하러 집근처 마트에 갔다. 한국의 대형마트에 비할 건 아니지만 여기서는 꽤 규모가 큰 '꼬또(coto)'가 가까이에 있어 편하게 이용하고 있다. 격리 기간이지만 마트는 열려 있어 그나마 다행이다. 그러나 출입인원을 제한하고 있어서 바깥 길에 줄 서서 기다려야 한다. 입구에서 문을 지키는 안전요원이 문을 열어주어야 들어갈 수 있고 그것도 가족당 한 명만 가능하다. 가끔 한 번에 몰아서 장을 보기 때문에 항상 남편과 동행하는 나는 꾀를 부려야 한다. 남편은 정문으로, 나는 뒷문으로 들어가서 채소 코너에서 만나기로 했다.

 

 빠른 시간 안에 필요한 것만 사서 나가기 위해 서둘렀다.
아침 식사를 위한 식빵 두 봉지와 건빵맛 크래커, 초코칩 쿠키, 아들이 좋아하는 오레오 쿠키, 파스타용 갈아놓은 토마토, 스파게티 국수, 감자, 토마토, 양파, 사과, 갈아놓은 치즈, 멸균 우유, 키친 타월, 주방 청소용 세제, 락스, 빨랫비누, 치약, 칫솔, A4 용지 500장 한 묶음 등등 장바구니에 담았더니 묵직하다.
 계산하려고 남편과 함께 계산대에 섰더니 계산하는 직원이 남편더러 저 멀리 떨어져 있으라고 했다. 어찌나 쌀쌀맞게 대하던지 마음이 좀 상했다. 한 가족당 한 명만 입장해야 한다는 규칙을 어겼으니 뭐라 한마디 대꾸도 못했다. 남편도 순순히 물러났다.
 하지만 신용카드와 꼬또 카드 사용으로 20%나 할인 받아 기분이 좋아졌다. 오늘 든 생필품 구입 비용은 3000$ar(페소), 미화로 환산하면 24$us(달러), 한국 원화로는 28800₩이다. 이렇게 계산해보면 그다지 비싸게 느껴지지 않는데 불과 몇 달 전에 비해 거의 수직 상승하는 물가 때문에 카운터에 설 때마다 마음이 답답해지곤 하는 요즘이다.

 

 치솟는 미국 달러 가치에 미친 것 같은 물가 상승으로 서민들 살기가 점점 어려워지는 것 같다. 아르헨티나 경기부양책이 효과가 있어야 할 텐데, 아르헨티나는 코로나로 넉 달 가까이 경제 활동이 마비되어 있다. 그러잖아도 디폴트 위기의 경제가 코로나 사태로 더욱 위기를 맞고 있다.
 중앙은행에서 화폐용지가 바닥날 정도로 페소화를 찍어내어 생계보조비를 지급하고, 기업체와 자영업자들에게 직원들 월급을 지원하고, 영세 자영업자들에게는 6개월 거치 12개월 분할 상환의 무이자 대출을 해주는 등 나름 여러 가지로 애를 쓰고 있다. 그전부터 아르헨티나는 지원금이 많은 나라로 유명하다. 한국에서도 아르헨티나는 포퓰리즘으로 망한 나라로 평가받는다고 들었다. 지금도 아르헨티나는 유럽형 복지제도를 고수하고 있다.
 여러 가지 지원금이 있어서인지 아직은 고요하다. 폭동의 기미는 감지되지 않는다. 8월이면 2001년 때처럼 폭동이 일어날 것을 우려하는 사람들이 있다. 한국 교민들 중에는 이 나라 정부시책에 부정적인 견해를 보이는 사람들이 훨씬 많다. 조만간 베네수엘라 꼴 날 것이라는 이야기도 있다. 수많은 실업자와 폐업하는 업체들이 속출하고 있어서이기도 하지만 정부 시책들이 일관성이 없고 이런 와중에도 불법과 편법으로 돈을 끌어모으는 사람들이 많아서 하는 소리일 게다.
 

 대책 없이 각종 지원금만 많다고 비판하지만 사실 나도 정부 대출금이 아니면 가계를 꾸려나가기가 어렵다. 3월부터 지금까지 수입 제로(0)이기 때문이다. 지금이라도 당장 이전 상태로 돌아갈 수 있다면 큰 문제는 없겠지만 격리가 풀린다 해도 경기 회복은 어려울 것이고 코로나 백신 개발은 기미도 보이지 않으니 상황이 낙관적이지가 않다. 위안이 되는 것은 혼자만의 어려움이 아니라는 것뿐이다
 걱정한다고 해서 내가 해결할 수 있는 건 하나도 없으니 전능하시고 모든 것을 섭리하시는 하나님께 맡기는 수밖에 없다. 그래도 이런 시기에 양손 가득히 필요한 것들을 구입할 수 있어서 감사하며 돌아왔다. 시원스럽게 하늘로 뻗어오른 가로수들! 한겨울 메마른 가지 끝에 매달린 무수한 잎들이 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흔들리고 있었다. 마치 걱정하지 말라는 듯, 어차피 겨울은 가고 또 봄이 오고 이렇게 세월은 바람처럼 나뭇잎처럼 스러져 갈 테니까.

                                          2020년 7월 10일 금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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